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간을 달리는 소녀

영화

by urmyboo0709 2019. 7. 2. 01:55

본문

 

누구에게나 여름만 되면 떠오르는 무언가가 있다.

 

더위를 그다지 타지 않는 내가 유난히 더워했던 2010년 그 해 여름, 그때 마셨던 아이스커피, 그리고 그 아이스커피를 책상에 흘려 몇 년동안 얼룩이 졌던 일. 나는 이런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얼룩은 정말 오래도록, 내 개인적인 공간에 머물렀다. 다리를 꼬고 인터넷을 할 때도, 정자세로 공부를 할 때도, 내 방에 앉아 있기만 하면 키보드 아래 커피얼룩이 희미한 냄새와 함께 나를 맞았다. 그것은 결코 잘 지워지지 않았고, 심지어 내 방 책상 위엔 유리 커버가 올려져 있었기에 커피가 유리틈 사이로 침투해 몇 달동안 제대로 마르지도 않았다.

 

이 영화가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가 아닐까 싶다. 여름마다 생각나는 애니메이션임은 물론, 잘 잊혀지지 않는 깊은 여운까지. 나는 이걸 이제서야 봤다. 앞으로는 맑고 습한 여름 특유의 공기가 나를 맞을 때, 이 영화를 떠올리며 여름이 당도했음을 느낄 것이다. 그만큼 굉장히 깊은 여운을 주는 영화였다. 이 작품에는 일상 속의 비일상, 비일상 속의 일상 같은 소재가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나는 그러한 소재를 무척 좋아한다. 사춘기 고등학생들이 등하교하는 장면, 언제나 같은 친구들로 가득 찬 교실, 드넓고 푸르른 하늘. 그런 소박하고 대단치 않은 일상들이 왠지 모르게 내 2010년 여름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그땐 잘 몰랐던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도 이제야 새삼 깨닫고 있다. 이 영화가 날 자꾸만 2010년으로 달리게 하는걸까.

 

 

호소다 마모루는 내 영웅이다.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나는 10살이 넘기 전까지는 쭉 디지몬 마니아였다. 디지몬 어드벤쳐 극장판은 20분 밖에 되지 않지만 아직도 내게 최고의 애니 극장판으로 남아있고, 우리들의 WAR게임은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모를 정도니까. 어릴적 느꼈던 영감과 설렘에 상당 부분 기여를 했던 인물임엔 틀림없다. 비록 그 이후의 무수한 히트작들 중 단 한 작품도 본 적이 없어도 말이다. 그 이유는 딱히 모르겠다. 애니메이션을 챙겨보는 스타일도 아닐뿐더러 난 디지몬이 좋았던거지 호소다 마모루를 좋아했던 게 아니니. 그래도 이 사람의 작품에는 내가 좋아하는 소재, 혹은 클리셰가 많이 등장한다. '선택'이라는 키워드도 그렇고, 주인공의 '성장'도 그렇고. 그리고 '일상'을 표현하는 그만의 방식도 좋아한다. 물론 이는 자기복제와 답습이라는 비판도 받는 부분들이지만, 나는 시달소까지 해서 고작 3작품 봤으니 속단은 이르달까.

 

특히 그가 특별 참여했었던 디지몬 어드벤쳐 21화에서 주인공의 '선택' 장면이 극단적으로 제시된다. 내내 디지털 세계에 머무르며 온갖 고생을 한 주인공이, 다시금 동생을 두고 집을 떠나야만 하는 안쓰러운 장면. 이 장면은 디지몬 시리즈를 통틀어도 손꼽히는 명장면이다. 결국 타이치는 '반드시 돌아올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난다. 재미있는 점은 태일이 잠깐 디지털 세계를 비운 동안 나머지 선택받은 아이들 일행은 리더라는 구심점을 잃은 채 온갖 음모에 휘말려 뿔뿔이 흩어진 상태가 됐다는 것. 타이치는 디지털 세계로 돌아오자마자 자신을 중심으로 아이들을 하나씩 규합해나가고 화해를 도모한다. 이는 리키나 키도(정석)가 아닌 타이치가 진정한 리더로 등극하는 분기점이라고 볼 수 있으며, 타이치 개인이 동생을 두고 집을 떠나는 '선택' 이후 내면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시간을 달리는 소녀에서도 주인공의 '선택'은 이후의 내용 전개를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강하게 작용한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얻은 마코토는 처음엔 '동생이 뺏어먹은 푸딩 먼저 먹기', '노래방 시간무제한' 같은 아주 일상적이고 별 거 아닌 일에 사용하며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앞으로의 진로를 이과냐 문과냐로 정하는 것이나, 고백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할까 같은 일에 사용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리고 마코토가 자신의 그릇된 선택이 타인을 의도치 않게 불행하게 한다는 사실을 깨닫자, 국면은 완전히 달라진다. 이 작품은 주인공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 변화를 타임리프라는 소재를 이용해 꾸준히 강조하고, 이분화된 화면을 통해 시각적으로도 제시한다. 영화가 관객들에게 묻는 것이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지, 혹시 지금 후회하는 선택은 없는 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해야 함이 옳을 지 생각해보라는듯이. 

 

마코토가 시간을 달릴 때마다 이 기괴하고 복잡한 시간의 잔해물들을 지나게 된다. 자꾸 디지몬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이 장면은 워 게임에서 디아블로몬이 잡입했던 네트워크 가상세계와 어딘가 닮았다. 형용하기 어려운 디지털 덩어리 위에서 날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구몬과 파피몬을 연상케 하고, 특정 시간이 적힌 디지털 시계가 끊임없이 초 단위로 변화하고 있는 모습은 역시 워 게임에 등장했던 시한폭탄을 떠오르게 한다. 호소다 마모루의 작품을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이러한 작품 간의 사소한 유사성은 그만의 감성을 구축하는 장치로 느껴진다. '가상 세계'라는 클리셰를 지루하고 뻔하지 않게 포장하는 그만의 연출 방법이라고나 할까. 내 경우엔 그저 디지몬이 호감이라 그렇게 느낄 수도? 아무튼 워 게임의 네트워크 공간과 시달소의 가상 공간이 궤를 같이 하는 씬이라는 건 누구나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자기 작품들 간의 연출적 유사성이 호소다 마모루의 재미있는 특징 중 하나라는 것.

 

 

이 영화에서 지겹게 나오는 문구다. Time waits for no one. 특유의 일본식 영어 발음이 귀에 좀 거슬리는 점도 있고, 명언 하나를 등장시켜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연출이나 충분한 스토리텔링을 거치지 않고 퉁치려는 경향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라 큰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이 단문은 몹시 중요한 함의를 지녔다. 마코토는 자신에게 고백했던 치아키가 정작 시간을 돌려 고백을 없던 일로 만들자 자신의 친구 유리와 사귀는 걸 보고 어이없어 한다. 그 황당한 마음을 목욕으로 달래던 중 자신의 팔뚝에 '90'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음을 발견한다. 90이라는 숫자는 매우 크게 느껴져서일까? 그 뒤로 마코토가 타임리프 회수에 대해 신경쓰는 연출은 그다지 없다. 갑자기 50으로 줄었다는 묘사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리고 그 숫자는 10까지 떨어진다. 다시 말해 급락한다. 하지만 10이 아니었다. 1이었다. 마코토는 여태껏 숫자를 거꾸로 보고 있었기에 10의 자리에 위치한 0을 일에 자리에 놓고 10단위로 세고 있던 것이다. 흥청망청 허무히 써버린 타임리프의 기회는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어느덧 단 한번만이 남게 되었다.

 

우리 일상에서도 가끔 그런 일이 있다.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나 재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내 생각보다 급격히 떨어지는 경험.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무언가가 급감하는 경험. 이는 사실 모두 본인이 소모한 것이다. 유달리 많이 쓴 일은 없었다고 생각하더라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돌이켜 보면 대부분 다 자신이 한 일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생각과는 다르게 빠르게 없어졌다고 느끼는 건, 그것이 무엇이건 자신에게 소중했기 때문이다. 작중 마코토는 타임리프의 찬스를 정말 일상적이고 허무한 일에 몇 번이고 써버린다. 푸딩이나 노래방 이외에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저녁식사날로 돌아가기, 친구들과 야구할 때 어떤 공도 놓치지 않기. '내가 주인공이었다면?' 하고 몰입했을 때 황당하고 형편없기 그지없는 선택으로 느껴질 지 모르겠다. 삼성의 주식을 미리 사놓는다던가, 비트코인의 흥망성쇠를 기록해 미래의 내가 볼 수 있도록 한다던가. 이런게 훨씬 현실적이니까. 하지만 마코토가 했던 대부분의 타임리프는 진정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일들이었다. 동생이 몰래 먹어 맛도 보지 못한 푸딩을 음미하는 일, 1시간으로는 부르고 싶은 노래를 다 부를 수 없어 10시간 동안 마음껏 노래한 일, 친구들과 야구하며 완벽한 모습으로 친구를 약올리는 일, 고기반찬이 올라온 저녁식사를 하는 일. 이 모든 일이 마코토에게는 진정하고 순수한 '행복'으로 다가왔다. 이 영화는 어쩌면 17살 여고생의 시각을 빌려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관객들에게 던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시간은 누구도 기다리지 않는다. 시간을 마음대로 되돌려 자신의 미래를 컨트롤하고 지배하는 마코토도 마찬가지였다. 초반에는 시간이 언제든지 그녀를 기다릴 것처럼 보인다. 아니, 시간이 꼭 자신을 기다리지 않더라도 언제든 시간을 되돌릴 수 있으니 기다림 따위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코토는 처음에는 그 문구를 그다지 진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하지만 치아키의 고백을 회피하는 데에 남은 회수 1을 다 써버린 마코토는, 고스케와 그의 여자친구가 자신의 고장난 자전거를 타고 사고가 나 죽는 것을 막지 못한다. 시간은 그녀를 기다리지 않을 뿐더러 그 누구도 기다리지 않으니까. 치아키는 그래서 이 문구를 거스르는 이질적인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결국 미래에서 온 치아키의 컨트롤로 이미 한 번 죽었던 고스케의 죽음을 없던 일로 하고 새로운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그 댓가로 마코토는 치아키를 잃었고, 자신에게 주어졌던 타임리프 회수도 모두 소모했으니 결과적으로 불행해 진다. 자신의 '선택'으로 '불행'이라는 결과를 떠안게 된다. 온전히 자신만을 위한 행복을 대가를 치르지 않고 얻을 방법 따윈 이 세상에 없다.

 

이런 불행이라는 결과를 단숨에 바꿔놓는 것이 남주 치아키이다. 마코토의 과오로 죽을 줄만 알았던 고스케를 치아키가 자신의 퇴장이라는 대가를 치뤄 불행이 일어나지 않는 과거로 바꿔 놓는다. 네가 입은 유카타는 좀 보고 싶었다는 말을 남긴 채. 이런 남주인공의 슈퍼맨성 기질, 초능력 보유 역시 마모루 감독의 여러 특징 중 하나다. 여주인공은 항상 남주인공의 특별한 능력에 의해 비교적 수동적인 입장이 되는 편. 여주를 앞세운 스토리텔링에 한계가 있어 시도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고, 남자 감독들이 보통 자신의 이상을 주인공에 대입하다 보니 이 작품 역시 신비한 능력을 가진 건 남주가 될 수 밖에 없다는 견해도 있다. 뭐가 됐든 요즘 시대엔 좀 별로인게 사실. 이 감독의 거의 모든 작품이 그렇다니까. 그래도 포장을 하자면 작품 초반에는 마코토가 자신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하지 못해 야구공을 제대로 캐치하지 못하는 모습이었지만, 후반에는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는 말과 함께 야구공도 잘 잡아내며 미래에 대해 주도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성장했다고 볼 수도 있어 커버가 어느정도 되는 측면도 있다.

 

 

누가 뭐래도 시달소의 백미는 하늘과 구름이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하늘을 보여주고, 가까운 과거가 아닌 좀 먼 과거로 가고자 다이빙대에서 타임리프를 할 때의 배경도 하늘이고, 치아키가 자신이 미래에서 왔음을 마코토에 고백할 떄 '하늘이 이렇게 넓은 줄 몰랐어'라고 이야기하고, 고스케가 후배에게 고백 받을 때의 배경도 하늘이며, 위의 사진처럼 마코토가 치아키와의 사랑을 서로 인정할 때 나타나는 배경은 유성이 떨어지는 저녁노을의 하늘이다. 그리고 엔딩 장면은 이 글에서 제일 위에 있는 사진, 무궁무진하고 밝은 미래를 뜻하는듯한 드넓은 하늘이다. 일간에는 마코토와 치아키의 이별 장면이자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인 저 롱쇼트씬에서 '치아키가 돌아갔다가, 다시 미래에서 돌아온거다', '못내 떠나지 않고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돌아 온거다'하며 의견이 분분한데, 그다지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둘 중 어떤 경우가 됐든 치아키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며 미래로 돌아갔고, 마코토는 이를 예전처럼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행동해 자신이 미래에 무엇을 할 지에 대해서도 강한 확신을 갖게 됐으니까. 영화 초반 자신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호텔왕', '석유왕' 같은 시덥지 않은 대답으로 일관하던 마코토에서, 끝없이 이어진 하늘과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이젠 과거가 아닌 미래로 달려갈 준비가 된 소녀가 되기까지. 97분이라는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였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