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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 '할 수 있는 최선의 것'

영화

by urmyboo0709 2019. 10. 4.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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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최선의 것, Best that you can do, 크리스토퍼 크로스의 노래 'Arthur's Theme'의 부제이다. 이 곡은 영화 <Arthur>의 주제가로 82년 아카데미에서 주제가상을 받았던 곡이다. 영화는 주인공 아서가 약혼녀와 웨이트리스 사이에서 자신의 사랑의 무게를 두고 저울질한다는 내용이다.

나는 이 노래를 아버지를 통해 어렸을적 알게 되었다. 섬세한 미성, 전혀 힘들이지 않고 올라가는 고음, 반면에 퍽 갈등이 첨예한 가사.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세상에서 제일 부드러운 고뇌가 아닐까. 영화 속 아서가 엄청난 재벌가의 금수저임을 알고 듣는다면 이보다 영화에 더 잘 어울릴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신의 고민을 마치 남의 것인냥 위에서 관망하는 느낌을 주는 목소리, 너무나도 쉽게 올라가는 고음. 그리고 두 여자 사이에서 배부른 고민을 하는 주인공.

이 노래를 간만에 떠올린 건 몇 시간 전 용산 아이맥스에서였다. 영화 <조커>를 개봉일 하루 지난 3일 밤 11시에 봤다. 조커의 주인공 이름도 아서. 이 노래를 왠지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화 전체는 <택시 드라이버>, <코미디의 왕>의 향기를 아주 강하게 품고 있는데, 뿐만 아니라 <아서>도 주목해볼만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앞선 두 영화가 단순한 오마주를 뛰어 넘어 작품의 뿌리 자체로서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아서>는 극중 조커의 본명이 왜 하필 '아서'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주기 때문이다. 외세의 침략을 모두 물리치고 브리튼족의 전설이 된 아서왕도 떠올려봄직 할 것이고.

토드 필립스의 조커는 명작이다. 최근 몇년간 본 영화 중 제일 만족도가 높다. 아무도 봐주지 않는 '착한' 사람들이 어떻게 오해를 받고 어떻게 소외되어가고 어떻게 악의 길을 걷는가에 대해 매우 진정성 있게 다루기 때문이다. 우리네 사회는 어떠한지, 영화를 보는 당신들은 타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소외받는 이들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쏟았는지 등에 대해 깊고 강한 성찰을 이끌어낸다. 또한 그 결말과 하강(어쩌면 상승 또는 흑화)의 과정이 매우매우 극단적인 것도 '조커'의 탄생비화이기에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계단을 빠르게, 화려하게 하강하는 장면은 영화 내 최고의 장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겠다.  좋은 사람으로 사는 일은 한걸음 한걸음이 높은 계단을 오르는 고행길과 같으나, 악에 물드는 일은 계단을 내려가는 속도와 같아 겉잡을 수 없이 빠르다. 수직과 하강이 강하게 대비되는 두 씬에서는 <기생충>의 연출도 떠올릴 수 있었다. 사회부조리와 현실을 거세게 비판하며 자정을 요구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두 영화 모두 거지같은 현 사회를 비판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개개인이 스스로 어떠한지 돌아보게끔 한다는 점에서 점수를 높게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부족하다. 그리고 여유로우며 굳이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이 세상의 주류를 이룬다. 최선을 다한 자들은 종종 소외된 자들이 된다. 소외된 자들은 이런 세상에서 최선을 충실히 다 해낼 수 없다. 이 세상의 무엇이 잘못됐는지,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우린 왜 최선을 다 해야하는지, 각자의 최선이란 무엇인지 생각해야만 한다. 엿같게도 그런 세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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